오늘의 묵상. 연중 제23주간 월요일(09/09/2019)
제1독서 : 콜로 1,24―2,3 복음 : 루카 6,6-11
사도 바오로가 공동체에 보낸 편지들(신약의 서간)을 보면 두드러지는 다음과 같은 특정 어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등등
그리고 오늘 제1독서에서 특별히 이와 같은 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는 자신을 누군가를 위한 존재로 생각하였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생각이 사도를 끝없는 헌신에로 이끌었습니다.
이런 사도의 모습과는 또 다른 인물들이 오늘 복음에서 등장합니다.
바로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인들이지요.
그들은 오늘 골이 났습니다.
예수님의 물음,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는 질문에 대답은 커녕 화가 잔뜩 난 모습입니다.
왜 그들은 화가 났을까요?
하느님과 교회와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삶을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하여 살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면 헌신하거나 봉사하면서 살기 어렵습니다.
열심히 살아갈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열심히 살아갈수록 손해보는 것 같고 잘 못되는 것 같고 서운한 것 같은 일이 더 많아집니다.
가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종’이라는 단어가 갖는 부정적 느낌을 제외하더라도
‘종’은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아니하고
주인을 위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눈으로 그것이 옳으냐는 별개입니다.
당신이 화가 납니까? 그 화의 이유는 대부분 무엇 때문입니까?
화가 아니라 서운함을 느낍니까? 그 서운함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혹여 당신도 자신을 위하여 타인들이, 교회가, 하느님이 계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시죠?
오늘 묵상글에서 신부님께서는 대답하기 참 어려운 질문을 하셨네요.
세속적인 풀이를 하자면 신부님의 질문이 딱 맞는것 같습니다.
세상은 나를위해 존재해야되고, 나를위해 이웃도 타인들도 필요하고,
교회도 하느님도 필요할테죠.
어쩌다 선교활동중에 이런 말을 하는분들이 있답니다.
"내주먹을 믿고 내 주머니 돈을 믿으면 된다." 라며 선교활동을 부정하죠.
보통 이런분들은 죽을만큼의 어려움에 처해보지 않았다거나 그런 도움을
받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은 하느님 중심이 아니고 자기중심으로 보일테지요.
이해할수 없은 여러가지 이유들이 많지만 그래도 성당으로 하느님 품으로
들어오는 양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으니 이는 모두 주님의 종으로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주님의 참다운 종이 되는것이야말로 최고의 은총과 축복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지상의 삶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 신부님께서는 월요일은 좀 쉬고싶으실텐데 월요일에도 빠짐없이 매일 묵상글을 양들에게 준비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오늘도 이시간 신부님을 위해 감사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