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정훈

화요신앙특강(10월 23일) -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 - 앤소니 드 멜로

posted Nov 27, 2018 Views 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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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 나아가는 길

앤소니 드 멜로

 

방법 47 : 찬미의 기도

 

나의 생애 중 나에게 그리스도의 현존을 가장 생생히 체험하게 해주고, 내가 하느님 사랑의 섭리에 감싸여 있으며 그 힘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깊이 느끼게 해준 기도방법을 말하라고 하면 나는 서슴지 않고 이제 이 책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려고 하는 바로 이 찬미의 기도방법을 택하겠습니다.

 

이 기도방법은 아주 단순합니다. 모든 일에 대해서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하느님께서 미리 아시고 계획하시지 않은 일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는 데에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 아무것도, 우리의 죄까지도 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 모든 죄 중에서 가장 큰 죄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을 원하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당혹하리만큼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이미 성서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분은 그 일을 겪으셔야만 한다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설교 중에 이 점에 대해서 유다인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여러분의 손에 넘어간 이 예수를 여러분은 악인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사도 2,23)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은 예견되어 있었고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죄는 분명히 우리가 증오하고 피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회개했을 때 우리의 죄에 대해서까지도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통해서까지도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부활성야 전례에서 ", 복된 잘못이여 아담의 죄는 필요했네!" 하고 크게 기뻐하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또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명백하게 말했습니다.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 그러면 '은총을 풍성히 받기 위하여 계속해서 죄를 짓자.' 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로마 5,20; 6,1-2)

 

우리의 죄에 대해서까지도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우리가 죄를 뉘우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 다음에는, 우리가 범한 죄에 대해서도 하느님께 찬미 드리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만일 헤로데와 빌라도가 회개했다면, 그들은 분명히 예수님의 수난 중에 자기들이 한 일을 깊이 뉘우쳤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수난 중에 자기들이 수행한 그 역할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게 된 것에 대해 하느님께 찬미를 드렸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이 지은 죄에 대해서 무거운 죄의식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한 부류에 속하는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 죄를 분명히 용서받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임종 때 몇 분 늦게 도착한 것에 대해서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을 해도 도무지 그 죄의식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에게 자신이 아버지의 임종에 늦게 도착한 일에 대해서 진정으로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릴 수 있게 도와 주자, 그는 말할 수 없는 안도와 평화를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는 갑자기 모든 것이 다 잘되었다는 것을, 모든 것이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이런 일까지도 이용하실 수 있고 이 일을 통해서도 좋은 일을 해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

 

이제 직접 이 방법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과거나 현재에 당신에게 고통이나 어려움이나 죄의식, 좌절감을 느끼게 해준 일들을 생각하십시오 .

 

이 일에 대해서 어떤 면에서든 당신에게 책임이 있다면, 그러면 당신이 후회하고 슬퍼하는 것들을 주님께 말씀드리십시오 .

 

이제 이 일에 대해서 하느님께 분명하게 감사를 드리고, 이 일이 일어나게 해주신 데 대해서 하느님을 찬미하십시오 당신은 이 일까지도 하느님께서 당신을 위해 마련하셨다는 것을 믿으며, 이 일을 통해서 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매우 유익한 은총을 베풀어 주실 것을 믿는다고 하느님께 말씀드리십시오. 비록 그 일이 어떻게 유익할지는 알 길이 없더라도 말입니다 .

 

이 일을, 그리고 당신 생애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있을 다른 모든 일들을 하느님의 손에 맡기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모든 것을 맡길 때에 받게 되는 그 깊은 평화와 안도 속에서 쉬십시오.

이 기도방법은 바오로 사도가 신자들에게 가르친 내용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모두 같이 부르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노래 불러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또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드리십시오."(에페 5,19-20)

 

"주님과 함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사람으로서는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필리 4,4-7)

 

어떤 사람들은 모든 일에 대해서 하느님을 찬미함으로써 일종의 나태함과 운명론에 빠지게 될까 봐 두려워합니다. 이런 문제는 실질적이라기보다는 이론적인 문제입니다. 이 방법으로 진지하게 기도해 본 사람은 누구나, 우리는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것을, 그러고 난 후에는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거기에 대해서 하느님을 찬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 기도방법에서 우려하는 것은 숙명론이 아니라 불쾌한 감정들의 억제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고통 받은 것에 대해서 슬퍼하거나 화를 내고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 가끔 필요합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하느님을 찬미하게 되며, 마음을 열고 하느님을 찬미할 때 얻게 되는 그 기쁨과 평화를 맛보게 됩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일에 익숙하게 되면,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그러한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갖가지 실망들 때문에 긴장하고 걱정하며 지내 왔으나, 아주 사소한 일까지도 버스가 늦게 온다거나 외출을 해야 하는데 날씨가 나쁘다거나, 대중중에 무심코 잘못한 말이라든지 … ― 걱정하며 살아왔으나 이제는 조용하게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고 나머지는 기쁜 마음으로 하느님의 손에 맡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모든 일이 잘되어 갈 것임을 믿고서 표면상으로는 그렇게 될 것 같아 보이지 않더라도.

 

중국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늙은 농부가 밭을 갈기 위해서 말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 말이 언덕에서 도망쳤습니다. 이웃 사람들 모두가 그 농부가 운이 나쁘다며 그를 동정했습니다. 그때 그 농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누가 안담?" 하고 말했습니다. 일주일 후에 그 말이 언덕에서 야생마 떼를 몰고 돌아왔습니다. 이번에는 이웃 사람들이 그가 운이 좋다면서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는 또 "불행인지 다행인지 누가 안담?" 하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의 아들이 야생마 하나를 길들이려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모두들 이 일이야말로 정말 운이 나빴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농부만 빼놓고. 그는 이번에도 "불행인지 다행인지 누가 안담?" 하고 말했을 뿐입니다. 몇 주일 후에 군대가 그 마을에 와서 그곳에 있는 건장한 젊은이들을 모두 징집해 갔습니다. 군인들은 다리가 부러진 그 농부의 아들은 징집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이제 과연 그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겉보기에는 나쁜 일처럼 보이는 일들도 사실은 좋은 일이 위장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겉보기에 좋은 일처럼 보이는 모든 일들도 사실은 나쁜 일이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 일이 다행한 일인지 불행한 일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하느님께서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잘되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으며 감사드리는 것이 현명하겠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노르위치의 율리아나가 말한 저 놀라운, 신비로운 안목으로 세상을 대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에 인용하는 이 말은 내가 읽은 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며, 내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하여 매사가 잘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매사가 잘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매사가 모든 면에서 잘 되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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