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세례자요한(성모성심) postedAug 31, 2018

제38장 빠뜨리치안 회 빠뜨리지안 회의 몇 가지 원칙 8. 하느님께 일거리를 드리는 일 402쪽~4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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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하느님께 일거리를 드리는 일

 

이 일에는 단순히 벽돌을 쌓아 집을 짖는 것 이상의 현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은총의 원리이다.

 

즉, 은총은 우리의 자연적 본성을 초월하여 우리가진 재료와 능력으로 지을 수 있는 집보다 훨씬 더 큰 집을  지을 수 있게 해준다.

 

 계시 종교에서는 신앙에 관한 어떤 문제에 대하여 아무도 완전한 해답을 제시할 수 없다.

 

모든 일에 초자연적인 믿음과 은총이 늘 개입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토론이었다 하더라도 항상 아쉬움은 남게 마련이다.

 

하물며 토론이 다소 충분치 못했다고 느껴지면,  흔히 그 토론이 아무 쓸모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미천한 우리의 노력마저도 당신 손에 받아 주시고 써 주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풀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문제가 의외로 해결된다.

 

과연 그 문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소한 것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문제의 정도에 비추어 우리의 노력이 훨씬 컸던 것인지, 혹은 하느님께서 모자란 부분을 대신 채워 주셨기 때문인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일은 우리가 바랐던 대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항상 우리의 철학으로 삼아야 할 내용이다.

 

물론 이 철학은 단지 빠뜨리치안 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이 철학을 통해서 빠뜨리치안 회합에 참석하는 모든 이들이, 자신의 능력으로는 훌륭한 발언을 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발언에 나서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미약한 노력이라도 전혀 노력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므로 온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은 결국 가톨릭 신자들이 얼마만큼 노력을 기울이느냐 기울이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내가 차라리 가만히 앉아 있는 편이 낫지' 하며 우물거리기만 하는 한, 그러한 노력은 기대할 수 없다.

 

가톨릭 신자 공동체에  이미 널리 퍼져 있는 현상이 이러하므로, 빠뜨리치안 히는 바로 이러한  현상을 치유하는 도움의 손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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