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이세례자요한(성모성심) postedSep 03, 2018

제39장 레지오 사도직의 주안점 1. 성모님과 함께 가지 않으면 영혼들에게 접근할 수 없다 ㅣ 성모님과 더불어 주님을 찬미하라. 418쪽~4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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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님과 더불어 주님을 찬미하라.

 

간단한 방법으로라도 늘 마음속에 성모님을 떠올리도록 하자.

 

나날의 모든 행동과 기도를 성모님의 지향과  뜻에 일치시키도록 힘쓰자.

 

어떤 경우라도 성모님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성부께 기도를 바치든, 성자께 기도를 바치든, 성령께 기도를 드리든, 어떤 성인에게 기도를 하든, 항상 성모님과  일치해서 바쳐야 한다.

 

성모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가 바치는 기도를 따라 해주신다.

 

성모님의 입술과 우리의 입술은 동시에  똑같은 기도를 만들어 내며, 어떤 일이나  함께 거들어 주신다.

 

이와 같이 성모님은 우리 곁에 계시는 정도가  아니라, 항상 그러셨듯이  우리 안에 계신다.

 

우리의 삶이란 우리가 성모님과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함께 바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성모님과 함께 하는 신심을 지닐 때, 우리는 비로서 구원 사업에서 성모님이 수행하셨고 지금도 계속 수행하고 계시는 성모님의 역할을 올바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가장 손쉽게 실천하는 방법이다.

 

올바른 성모 신심은 '성모님에게는 얼마만큼 바쳐야 되느냐?" 또는 '성모님에게 바치는  것만큼 하느님께 바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망설이거나 의아해 하는 사람들의 염려도 해결해 준다.

 

그런데 이를 '너무  지나치다' 고 생각하는 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것이 어떤 점에서 건전한 이성에 배치된다는 것인가?

 

또한 성모 신심이 어떤 점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권능을 부정하고 있다는 것인가?

 

특히 후자와 같은 잘못된 생각은 흔히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그들은 하느님의 권능을 받든다고 말하면서도 하느님께서 정하신 계획을 스스로 실천에 옮길 생각은 없으며, 성서가 하느님의 거룩하신 말씀이라고 주장하면서도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큰일을 하시어 이제로부터 온 백성이  마리아를 복되다 일컬으리라. (루카 1, 48-49 참조) 고 노래하는 성서 구절은 귀에 들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풍성하고 온전한 이 신심을 알아 듣도록 설명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사실상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성모님에 대하여 무슨 다른 말로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그런데 주의할 일은, 성모님께 대하여 말할 때 결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즉, 성모님을 소홀히 생각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다거나 깎아 내리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성모님을 더욱 알 수 없게 만들 뿐이다.

 

성모님을 일종의 그림자나 감상적 개념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다면, 이는 반 가톨릭적인  잘못된 인식으로서 성모님을 무시하는 자들의 주장만 정당화시킬 뿐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리스도인의 삶속에서 성모님이 차지하시는 본질적인 위상과 권리에 대해서 바르게 설명해 준다면, 아직 얼마간의 은총이라도 남아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살아나, 그를 올바르게 이끌어 준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모님의 역할에 관해서 조용히 살펴보게 되고, 결국 성모님의 발 아래 무릅을 꿇게 되는 것이다.

 

 레지오의 목적은 성모님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이다.

 

그러므로 레지오가 이러한  이상을  충실하게  이행한다면, 신앙을 갖지 못하고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의 마음에 빛을 던져 주시는 성모님의 더없이 큰 은총을 나누어 주는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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