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김정훈

4/3 화요신앙강좌 "이 사람은 누구인가"의 부활편을 옮겨 싣습니다.

posted Apr 03, 2018 Views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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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을 알리는 가락

 

앞서 보았듯이 예수는 한편으로는 영적인 고통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인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이로운 품위와 주권을, 신적인 존엄과 영예를 주장하였다. 이렇듯 부활의 빛은 치유와 행동, 말씀과 가르침을 통해서만 비칠 뿐 아니라 극도의 무방비 상태와 죽음의 단말마를 통해서도 비치는 것이었다.

이제 우리는 부활 아침을 맞는다. 이 아침은 결정적인 돌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드러난 승리가 결정적인 확인이며, 하느님이 그 안에서 우리들을 향해 자신을 보여 주신 계시이다.

 

부활을 두고 우리들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늘이 바이올린으로 가득하다는 금언을 감히 쓸 수 있다. 온 땅과 우주에 노랫소리가 울린다. 우리는 절대자가 그의 창조에서 때로는 뚜렷이 또 때로는 우리 인간 위에 불가사의한, 거의 아픈 불협화음으로 들려주는 가락의 주도악구를 알아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가락은 어김없이 베토벤의 9번 교향곡처럼 빛나는 종악장으로 끝맺는다. 중세의 위대한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 주도악구에 귀를 기울였고, 하느님 가락의 기조는 단 한 가지, 곧 사랑밖에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나도 한번은 이 경이로운 가락을 어느 순간 들은 적이 있다. 그때는 하늘이 바이올린으로 가득하지 않았다. 나는 열아홉 살 나이에 게슈타포에 잡혀 독방에 감금되어 있었는데, 그다음 날이면 강제수용소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순례 조직에 협조하였다는 고발이었다. 강제수용소가 무엇을 뜻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고향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꿈도 못 꾸었다. 그렇게 날은 저물었다. 경찰서 유치장의 조그마한 창을 통해 도시 위에 솟아 있는 노르트겟터의 한 귀퉁이를 마치 자유의 마지막 인사처럼 바라보았다. 유치장 앞에는 상수리나무 몇 그루가 있었는데 우리 소년 그룹의 장난꾸러기 한 명이, 우리가 위층에 수감되어 있는 걸 알고, 나무에 기어 올라가 친위대원들이 알 턱이 없는 가락을 휘파람으로 불어 주었다. 그것은 그 무렵 처음으로 전례에 도입된 아가서의 한 자락이었다.

 

사랑은 죽음처럼 힘이 억센 것, 사랑의 화살은 불로 된 화살, 큰물도 사랑만은 끌 수가 없고 강물도 쓸어 가지 못하옵니다.”

 

바로 이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스스로를 계시하는 하느님, 구원의 찬가, 성삼위의 기조 악상, 시간 안에서 영원한 선율.

 

부활을 노래하는 그 악상에는 여러 절이 있다. 거기에는 우선 그럼에도 사랑이라는 절이 있다. 하느님은 혼란을 거슬러, 고난과 저항과 어둠의 뇌우 속에서도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고자 하셨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라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셨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이 고통과 죽음과 죄악을 왜 허용하시는가 하는 신비에 접하게 된다. 그분은 사랑이 더 강하다는 것을 보이고 계시며 더욱 뚜렷이 보이실 것이다.

 

다음으로는 듣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자비의 절이 있다. 복음서는 이 소절을 거듭거듭 노래한다. 양을 찾으러 초원과 가시덤불을 헤매는 착한 목자의 모습에서,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나누는 대화에서도 당시 사회의 금기와 편견을 무릅쓰고 이 자비의 절이 들려온다. 이 자비의 절은 특히 간음한 여인과의 장면에서 아주 뚜렷해진다. 바리사이 시몬의 집 잔칫상 곁에서 벌어진 죄녀와의 감동적 만남에서는 이 소절이 연회 음악같이 들려온다. 자비의 이 가락은 심지어 십자가 처형장에서의 망치 소리조차도 누리지 못한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한 첫마디는 죄사함의 자비로운 말씀이었다.

 

나는 그리스도교를 일련의 그저 좋은 말로 변형시켜 버리는 무리에 속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음을 벌써부터 느끼고 있다. 맞는 말이다. 나는 하느님의 압도적인 자비를 믿고 있으며 이것만이 내 삶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 준다. 하기야 예수가 그의 사랑의 노래 중에 때로는 북 치며 나팔 불며 자비의 가락을 들려주었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그리스도는 강자에게는 강경하고 약자에게는 부드러웠다. 더 나아가 큰물로도 끌 수 없는 이 부활의 사랑 노래에는 또한 도움과 보살핌과 공감과 동참의 소절도 있다. 치유의 주님이 큰물로도 끌 수 없고, 강물도 휩쓸어 자기 못하는 사랑의 이 소절을 선창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언제나 하느님의 가락이고 이를 노래하는 곳이면 어디나 구원하시는 하느님이 멀리 계시지 않는다.

 

계시의 하느님은 당신 창조에 이 가락을, 여러 소절과 변주로, 때론 조용하게 때론 아주 강하게, 작곡해 넣은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이 가락을 한 장난꾸러

기를 시켜 비밀경찰 감옥 안까지 들려주었다.

 

사랑은 죽음처럼 힘이 억센 것, 사랑의 화살은 불로 된 화살, 큰물도 사랑만은 끌 수가 없고 강물도 쓸어 가지 못하옵니다.”

 

신앙의 부활 빛이 밝혀지기 어려운 오늘

 

성토요일 밤에는 불이 타고 있다. 부활 성야 전례는 저녁 하늘을 향해 솟은 수없는 성당 정문과 담 앞에서 거행된다. 이 독특한 빛의 축제는 틀림없이 더 아름다워졌고 마땅한 자리인 회중 한가운데로 옮겨졌다. 다만 이 부활의 불빛이 오늘날 보게 된 심미적인 전례 체험 너머, 촛불과 찬란한 조명 너머,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풀리지 않은 죄책의 어두운 구석까지, 그늘져 가는 마음들까지 비추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 그 불빛이 과연 생명 존중과 인간성의 증진으로 이어지는지, 희망의 불꽃을 일으키는지, 부활 불빛의 반사가 사회의 길거리에까지 비치는지, 구원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기쁨이 솟게 하는지 묻게 된다. 이것이 문제이다.

 

예수 부활의 소식 전달은 항상 어려웠다. 부활하신 분을 직접 만난 제자들에게마저 어려웠다. 그 발현에 압도되고 기뻐 어쩔 줄 모르면서도 한동안 그들은 이를테면 노출 부족이었다. 더 깊이 깨닫는 데는 성령의 강림이 있어야 했다. 부활 불꽃의 소식 전달은 언제나 어려웠다. 그 당시 세상에서 바오로도 이 어려움을 어떻게 체험하였는지 사도행전 17장은 이야기해 준다.

 

 

이제 장면을 바꾸어 바오로와 함께 아테네의 시장터로 한번 걸어 들어가 보자. 아테네는, 기술적 변화만 아니라면, 오늘의 우리 세계와 정말 닮았다. 그곳은 하나의 다양하고 다원적인 세상으로 로마제국의 여러 지역에서 흘러 들어오는 고대와 동양의 조류가 뒤섞이는 곳이었다. 거기에는 철학의 여러 유파와 신비로운 밀교들, 학자들과 도사들, 사상가들과 말쟁이들, 진정한 구도자들과 비교적秘敎的 환상가들, 호사가들, 선정적인 불가지론자들이 모두 오늘날처럼 모여 살았다. 옛 아테네는 지난날의 영화는 다 바랬으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데모스테네스, 피타고라스와 같은 위대한 인물들의 보고 있었다. 세계도시답게 너그러운 마음, 때로는 다 안다는 식의 교양에 대한 자만에 젖어 오늘도 그렇듯이 문화 운운하고 있다. 이런 피상적이고 어지럽고 천박한 사회 한가운데에서도, 역시 오늘도 그렇듯이, 진지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세상을 향해 바오로는 부활의 불을 던진다. 이야기를 해 보라고 청을 받은 그는 그가 보기에 청중 쪽에서 긍정적이고 유망한 면을 들어 관심을 끌어 보려 한다. 그는 허다한 신전과 성지 중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바쳐진 제대를 하나 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를 접점으로 삼아 보고자 하였다. 그리고 발을 들여놓는 데 거의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순박한 서민들은 옛날부터 줄곧 많은 신들을 아직도 믿고 있었고, 도시의 식자층은 그런 믿음에서 벌써부터 벗어나 있었다. 사람들은 타르소에서 왔다는 이 천막공에게 물론 무슨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무언가 막연하게 신적인 것에는 귀를 기울여 보자는 거였다. 그런데 바오로가 웬 부활 이야기를 시작하자 잘난 청중은 비쭉거리며 빈정댔다. “그런 이야길랑은 두었다가 다음에 들읍시다.”

 

부활 불꽃이 이 탁한 물에서는 픽 꺼져 버릴 것 같았다. 부활한 분의 소식 전달은 본래 어려웠다. 하지만 몇몇 사람에게서는 불이 붙었다. 이들 역시 지친 문명의 상징인 아테네의 그 장터에서, 부활 밤의 빛을 받았던 것이다. 그때까지 이들은 가소로울 정도로 소수였다. 그런데 그들 안에서 붙은 불은 아크로폴리스와 아레오파고스, 철학 유파와 밀교 신봉보다 오래갔다. 그러나 부활의 빛은 여전히 온 세상에서 타고 있다.

세상을 바꾸어 놓은 그리스도의 광휘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하나의 크나큰 은총이다. 이 믿음은 과거에도 쉽지 않았고 앞으로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렵고 혼란스러운 세상 한가운데서 오늘도 그대로 부활이 알렐루야를 마음을 다하여 노래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이 노래 안에서는 절대적 미래가 공명한다. 그렇다. 또 그렇게 머물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교회 대책에까지 어디서나 때로는 크게 작용하는 통계 숫자는 결코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아테네의 장터에서도 그렇지 않았다.

 

부활 불꽃이 널리 비치기 위해서는, 전례와 경건한 아름다움을 넘어, 하느님의 예측할 수 없는 은총 외에도 또 다른 무엇이 결정적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암흑을 이기는 위대한 승리를 엿보게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이다. 부활의 빛발을 성당에 앉아 있는 이웃 너머로 전할 줄 아는 신자들이 있음이다. 우리 시대에도 확실히 많은 이들이 다른 누구로부터 적은 빛이라도 기다리고 있다. 바로 아테네의 장터에서도 그랬고 모든 시대의 온갖 인간적 만남의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다. 사회의 시린 저녁 바람에 또는 성당의 썰렁한 외풍에 가물가물하던 부활 불빛이 두고두고 오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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