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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본당 주임신부님
2016.05.17 14:24

네잎 클로버 편지

(*.193.111.77) 조회 수 512 추천 수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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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잎 클로버 편지”

  “신부님! 늘 가까이에 있지만, 신부님을 뵙기는 참 어렵군요.
밑바닥 일을 하고 살다보니, 좀 부유하고 높은 분들을 만나면 저절로 소외감이 느껴진답니다.
어쩌다 아줌마가 되어서, 이렇게 궂은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야 되다니. . . 참 세월도 빠르네요.
학교 다닐 땐 공부가 하기 싫었는데, 머리에 든 게 없어서 육체적 노동을 해야 한다는 게 지금은 참 속상하네요.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분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신부님!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남편이 술 먹고 속 썩여서 잘 못 보냈네요.
남편이 백수이다 보니 친형제도 아무도 오지 않고 연락이 없네요. 고아가 따로 없습니다.
저도 놀러 가지도 못한답니다. 거지 같이 옷 입고 놀러 가면 좋아하는 언니 오빠가 없더군요.
참 돈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돈 없으면 잔치가 있어도 불러주지 않더군요.
정말 슬퍼서 성당에 가서 성서 쓰기만 실컷 하였습니다. 어쩌면 하느님께 충성하라고 이런 일이 생겼나 싶었습니다.
남편이 사람 구실을 못할수록 저는 주님 기도를 더 많이 올린답니다.
‘아! 나의 인생이여’하고 탄식이 나오기도 한답니다. 신부님 건강하세요. 그럼 이만 줄입니다.
2010년 9월 24일” ...그리고 시 한편...

  자매님, 미안합니다. 이 편지를 혼자 읽고 묻어두기에는 제 삶이 너무나 부끄러워서 적어봅니다.
혹시 사생활에 침해가 되었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자매님의 글은 솔직하면서도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운율이 있어 좋습니다.
가끔 보내 주시는 편지를 읽다보면  웃음이 묻어나기도 하고, 힘겹지만 무너지지 않는 삶이 보입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매님의 편지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민족의 배신자로 손가락질 받는, 키 작고 볼 품 없어 열등의식에 빠져있는 자캐오가 떠올랐습니다.
사람들은 겉모습만으로 자캐오를 무시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캐오 속에 숨어 있는 당신과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읽어 내십니다.
그리고 그의 집에, 자캐오 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람들은 받아들이지를 못합니다.
질투와 편견, 오해가 한꺼번에 뒤엉켜서 투덜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자캐오를 죄인이라 여기며 투덜거리는 사람들 무리 속에 제가 눈을 말갛게 뜨고 있습니다.
  자매님, 저에게는 아직 하느님의 은총이 많이 부족합니다. 세상과 저는 아직 하느님의 눈을 가지기에는 영악합니다.
그리하여 자캐오의 따뜻한 마음을 읽어 내기에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경 열심히 쓰시고 기도 하십시오.
오늘 밤 주님께서 자매님 집에 묵어가실 것입니다.          
  편지 속에 넣어 보내 주신 네잎 클로버는 컴퓨터에 붙여 놓고 늘 바라보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가을이 깊어 가는 만큼 하느님 은총이 깊어지기를 기도드립니다.

<몇년전 교구보 강론>
제가 진해 복지관에서 일할 때 청소하시는 자매님이 가끔 편지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 편자 중 한편을 인용하여, 교구보 강론에 썼습니다. 지금도 그 자매님께서 가끔 편지를 보내 주십니다.
삶이란 참으로 자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주님 뜻을 찾아 깨닫고 행복하기를 기도드립니다.
 

  • ?
    옥포성당 세례자요한 2016.05.24 10:20 (*.176.92.10)
    매우 소중한 영성의 사연으로 마음을 울리네요.
    영성의 기준이야 누구에게나 서로 다를수 있겠지만
    세속의 가난함과 육체적인 고생의 환경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름답게 거룩하게 피어나는 가난함의 영성...
    오늘 가난한 영성의 사연을 올려주신 신부님의 칼럼을 읽으면서
    부끄러움 마음이 많이 든답니다.
    신부님께서 올려주지 않으시면 모두 묻혀버릴 영성의 사연들이어서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답니다.
    신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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