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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본당 주임신부님
2016.05.28 21:46

성모님의 밤

(*.193.111.77) 조회 수 501 추천 수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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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모님의 밤"

  늦은 밤 천둥소리에 깨어서 일어납니다. 창문에 빗소리가 후두둑 들리고 푸른  빛이 한줄기 번쩍 지나갑니다.
잠시 후 꽈르릉 천둥이 다시 웁니다.
새벽 세시, 다시 잠을 청할까 누워 보지만 쉬이 잠이 들지를 않습니다. 다시 푸른 번개가 스쳐 지나갑니다.
잠시 후에 천둥이 치겠지요.
무심한 마음에 밖으로 나와 봅니다. 비가 세차게 내립니다.

  우산을 펴고 비를 가리면서 성당을 한 바퀴 휭하니 돌아봅니다. 공사 중이라 다듬다만 대리석과 자재들,
나무 한그루와 김대건안드레아 성인 동상까지. 새로 다듬어 붙인 대리석 벽이 비에 씻겨 깨끗하게 보기 좋습니다.
웅장한 벽채에 붙어 있는 까만 바탕에 하얀 “옥포성당” 현판도 멋지게 보입니다.
있어야할 자리 그 자리에 모든 것이 그대로 있습니다. 신발에 물이 스며들어 옵니다.
얼른 사제관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푸르게 하늘을 가르는 빛에 드러나는 예수님 모습을 힐끔 쳐다봅니다.
두 팔을 벌리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시고 계시는 예수님.
웃으시는 듯, 슬픈 듯 묘한 얼굴 위로 빗물이 흘러내려 눈물 같기도 합니다.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사제관으로 가다보니, 벌써 짙푸르게 감싸고 있는 나무들 사이에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시는 성모님의 모습.
아직 꺼지지 않은 촛불 몇 개가 비를 뚫고 아른 거립니다. 어머니도 지금 이 밤에 깨어 계시겠지요.
번개와 천둥에 놀라 후두둑 날아오르는 새들과 울어대는 어린것들을 감싸주시려고 깨어 다니시겠지요.
건설이래 최대의 조선업 위기라는 환난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숱한 생명들을 보듬어 주시기 위해 이 새벽에도 어머니는 잠들지 못하시겠지요.

  어머니, 세상을 돌아봅니다. 제 삶을 돌아봅니다.
사랑이 무엇인지,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나 혼자 살기 위해 바둥거리는 우리의 모습에 가슴이 쓰라립니다.
당신께서도 자녀들의 어리석음에 아픈 가슴을 달래시려 언제나 말없이 오늘처럼 또 그렇게 비를 맞고 계십니까?
이제 그만 환히 웃으시며 아드님 예수님과 함께 즐거운 노래 부르실 때도 되었지만, 이 밤에 잠들지 못하고 계십니까?
  무심한 빗줄기 마냥 무관심한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
탐욕과 이기심과 체면과 위선에 싸여 진리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이 빗속에서도 기도하고 계십니까?

  어머니 !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까? 당신 아드님께 끊임없이 드리는 청원의 기도, 이기심의 기도를 어떻게 주님께 전해 주시겠습니까?
주님의 두 팔을 잡으시고 이 자식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는 어머니, 이제 우리의 기도가 찬미의 기도가 되게 하시고,
나눔의 기도가 되게 하시고 사랑의 행동이 되도록 바꾸어 주십시오.

  우산을 접으면 우산 끝으로 빗물이 주루룩 타고 흐릅니다.
어머니의 하얀 얼굴위로 빗물이 소리 없이 타고 흐릅니다.
혹시 제가 잘못 보았는지요. 그 빗물이 우리를 위해 흘리시는 어머니의 눈물은 아닙니까?

  이 밤이 깊어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습니다. 성당 대리석벽을 타고 흐르는 빗물에 근심과 걱정을 씻어보며,
이 빗물이 어머니와 예수님의 눈물이라  여깁니다.
사제관 문을 열다 돌아서서 바깥세상의 어둠을 응시합니다. 어둠 한 쪽에서 아른하게 피어나는 빛을 봅니다.
내일의 두려움에 뒤척이는 모든 자녀들을 위로해 주시는 성모님의 빛,
어떤 고난이 있더라도 용기를 잃지 않도록 우리 손을 잡아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봅니다.
  밤이 깊을수록 새벽은 가까이 다가오고, 어둠이 짙을수록 빛은 더 밝아진다는 것을 생각하며
주님과 어머니께 우리 삶을 맡기며 사제관 문을 닫습니다.
  어머니시여 옥포성당과 거제의 모든 자녀들이 당신의 간구로, 주님 은총의 빛으로 나아가도록 이끄소서.

2016년 성모님의 밤에 옥포 성당 신자들과 함께 어머니께 드리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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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포성당 세례자요한 2016.05.29 09:33 (*.176.92.10)
    우리 주임신부님의 거룩한 기도에 감동을 전해옵니다.
    요한이는 야간근무가 되어서 출근하며 성모의밤 행사에 참석도 못하고
    신부님의 기도 칼럼을 읽다보니 죄인은 요한이 뿐이네요
    주님이신 예수님과 어머니 성모님을 향한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
    그리고 본당공동체와 신자 비신자 가릴것 없이 이곳 거제의 어려움과 모든 사람들을위해
    기도해 주시는 우리 신부님께서 이 순간 더욱더 거룩해 보이십니다.
    신부님을위해서 요한이도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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