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찬가지로, '천사의 아룀'은 성모님의 막중한 지위를 나타낸다.
이제 예언은 절정에 다다른다.
이미 오랜 세월 동안 마리아 안에 다져진 하느님의 뜻은 바야흐로 열매를 맺으려 하고 있다.
하느님의 자비에 넘친 계획으로 이루어지는 저 놀랍고도 감동적인 장면을 생각해 보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저 '평화 회담'에 참가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 평화 회담을 '천산의 아룀' 이라고 부른다.
이 회담에서 하느님 편은 한 분의 대천사가 대표하였고, 인간 쪽은 우리 레지오가 영광스럽게도 그 이름을 받들어야 할 특권을 지닌 한 여인이 대표하였다.
그 여인은 얌전한 처녀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날 온 인류의 운명은 그 여인에게 달려 있었다.
천사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소식을 가지고 왔다.
구세주를 잉태하게 된다는 소식이었다.
그런데 천사는 단지 일방적으로 소식을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여인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인류의 운명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질지 전혀 알 수 없는 순간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열망하고 계셨다.
그러나 이보다 사소한 문제를 다루실 때에도 그러하셨듯이, 이 중대한 일에 있어서도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강제로 꺾으려 하지 않으셨다.
하느님께서는 한없는 은혜를 내려 주고자 하시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 쪽이므로, 인간에게 그 은혜를 거절할 자유마저 주셨다.
인류 운명의 순간은 그렇게 다가왔다.
그 순간이야말로 그때까지의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기다렸던 순간이며, 그 이후의 모든 세대가 돌이켜보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모든 시대 가운데 위기의 순간이었다.
한 동안 침묵이 흘렀다.
여인은 즉시 수락하지 않은 채 질문을 했고 대답을 들었다.
또 한 차례의 침묵이 흐른 뒤 그 여인은 응답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루카 1,38) 이 응답은 하느님을 이 땅 위에 모서 왔으며, 이로써 인류의 위대한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