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개종시키려면 성체를 설명하여라.
때때로 논쟁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경우를 본다.
그러나 그러한 논쟁으로는, 설사 합당한 논리로 교회를 증거한다 해도 상대방을 교회로 이끌어 들이지는 못한다.
믿지 않는 이들을 찾아가 대화를 나눌 때는 그들로 하여금 단지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보화를 엿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데는 성체 교리를 설명해 주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없다.
예수님에 대해서 어렵풋이 알고 있거나 또는 잘 모르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의 성체에 대해서 설명해 주면 예수님을 열렬히 찬미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들과 함께 사시면서 보여 주신 기적들, 즉 죽은 이를 다시 살려 내시고 예수님의 명령 한마디에 병마가 사라지는 등의 기적에 대해 이야기를 들으며, 예수님께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초자연적 권능을 행사하신 분이시고 모든 자연의 힘이 그분께 복종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권능으로 이 모든 기적을 직접 행하셨고, 인간이셨지만 동시에 영원하신 하느님 자신이시며, 만물을 창조하셨고, 말씀이 바로 권능이시기 때문이다.
성서는 하느님이시며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행하신 그 무수한 기적 가운데서, 특히 성체라는 사랑에 넘치는 기적을 세우신 사실을 전하고 있다.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 (마태 26, 26)라고 말씀하셨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주님의 말씀인가! 그런데도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 (요한 6, 60) 예수님의 몇몇 제자조차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 듣지 못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 있었으니, 이러한 불신이 교회의 역사 속에서 수도 없이 많은 영혼들을 잃어버리게 한 원인이 되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 줄 수 있단 말인가?"(요한 6, 52) 제자들은 그들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아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불신은 용서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고 그분이 하느님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심을 인정하면서도, 예수님의 성체를 석연치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럴까?
그들이 인정하는 그리스도께서 단순한 마음을 지닌 제자들을 향해서 엄숙하게 "이것은 내 몸이다." 라고 말씀하셨을 때, 살마 당신의 몸이 아닌 것을 '내 몸' 이라고 하셨겠는가?
만약 그렇게 하셨다면, 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속이신 것이니,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는가!
파스칼의 준엄한 논리는 바로 이러한 불신의 무리들을 향해 외친 말이다.
"성체를 믿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을 내가 얼마나 경멸하는지 아는가?
복음이 진실하다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이시라면, 성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무슨 문제가 되는가?"
그러므로 우리늘 압도하는 예수님의 성체에 대해 의심을 품는 사람들을 우리가 그저 무관심하게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다.
성교회의 지고(至高)한 빛이신 성체를 우리의 갈라져 나간 형제들이 바라다 볼 수 있도록 그들 앞에 끊임없이 들어올려야 한다.
그들의 마음을 움직여 성체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이 신비를 바르게 깨닫고,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나는 지금 얼마나 끔찍한 손해를 보고 있는가!" 하고 갈등을 겪게 될 것이며, 처음으로 '참된 집'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충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자시의 삶을 진지하게 이끌고자 노력하는 사람들 중의 많은 이들은, 그들 자신은 교회 밖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성서를 읽고 묵상을 하고 때로는 기도하면서 낡고 희미한 역사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찾아내고자 노력한다.
그러다가 때때로 그들의 마음속에 사랑에 찬 주님의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기쁨에 넘친다.
그렇다면, 만일 이 사람들이 교회 안에 성체의 신비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예수님의 원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즉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니신 예수님을 총체적으로 그들의 삶 안으로 모셔 오게 됨을 그들이 깨닫게 된다면, 또 만일 그들이 성체를 통하여 예수님과 접촉하고 예수님과 이야기하고 예수님을 생각하고 또는 베타니아에서 예수님과 가까이 지냈던 예수님의 사랑하는 친구들보다도 훨씬 더 가깝고 친하게 예수님께 열중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겠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성모님과 일치하여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들은 어머니께서 예수님의 거룩한 몸을 온갖 사랑으로 돌보셨던 것처럼, 어머니와 함께 예수님을 돌보아 드리게 되는 것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한 맞갖은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교회 밖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이 빛을 그리워하도록 만들려면, 오직 비할 수 없는 성체의 은총을 설명해 주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그렇게만 하면, 그 다음은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에 관한 모든 일을 그들이 깨닫도록 해주실 것이다.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 것처럼, "너희는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라는 그 '어려운 말씀'의 뜻을 그들이 명확히 깨닫도록 해준다면, 그들의 마음도 뜨거운 감동으로 달아오를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눈이 열리고 거룩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게 될 것이다.(루가 24,13-15 참조)
이렇게 성체에 대하여 바르게 인식할 때, 하늘나라로 향하는 마음을 어둡게 하던 오해와 편견은 타는 듯한 햇볕 아래 눈송이처럼 녹아 없어질 것이고, 이때까지 앞을 보지 못하고 걸어온 그들은 뿌듯한 마음으로 이렇게 외칠 것이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앞못보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잘 보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요한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