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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9 00:08

해미순교성지

(*.163.139.185) 조회 수 861 추천 수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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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미 성지

어느 순교지나 선조들의 위대한 정신과 숨결이 느껴져 후손을 자랑스럽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폐부를 찌르는 깊은 신음과 함께 서려 있기도 하다.
해미 성지는 다른 어떤 순교지보다도 당시 참혹했던 핍박의 흔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다.
1백 년의 박해 기간 동안 단 한 차례도 그 서슬이 무뎌지지 않았던 해미는 수천 명의 이름 모를 순교자들이 웅덩이와 구덩이로 내몰린 채 생매장당한 기막힌 사연을 갖고 있다.  
'해뫼'라 일컬어지는 해미 고을은 역사적으로 조선 초기에 병마 절도사의 처소를 둔 곳으로서, 조선 중기에는 현으로 축소 개편된 진영에 1,500여 명의 군사를 거느리는 무반 영장이 현감을 겸해 지역을 통치하던 곳이다. 내포 일원의 해안 수비를 명목으로 진영장은 국사범을 독자적으로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1790년에서 1890년에 이르는 100여 년의 기간 동안 해미 진영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을 국사범으로 처형했다.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1846년 병오박해, 1866년 병인박해 등 조정이 천주교 탄압을 공식화할 때뿐만 아니라 해미 진영은 끊임없이 내포 지방의 교우들을 잡아들여 죽였다. 이 박해 기간 동안 해미 진영에 있었던 두 채의 큰 감옥은 잡혀 온 교우들로 가득했고, 그들은 매일 서문 밖으로 끌려 나와 교수형 참수, 몰매질, 석형, 백지사형, 동사형 등으로 죽어 갔다. 또 더욱 잔인하게 돌다리 위에서 팔다리를 잡고 들어서 돌에 메어치는 자리개질이 고안되기도 했고, 여러명을 눕혀 두고 돌기둥을 떨어뜨려 한꺼번에 죽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숨이 끊어지지 않아 꿈틀거리는 몸뚱이를 발견하면 횃불로 눈을 지지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해미 진영의 서문 밖은 항상 천주학쟁이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그 피로 내를 이루었다 한다. 한 명씩 처형하는 데 지친 관헌은, 특히 1866년 병인년에서 1868년 무진년에 이르는 대박해 시에는 시체 처리를 간편하게 하기 위해 생매장을 하기도 했다. 해미 진영의 서녘 들판에 수십 명씩 끌고 가 아무 데나 땅을 파고 구덩이에 산 채로 집어넣고 흙과 자갈로 덮어 버리는 참혹한 행위가 수없이 되풀이 됐다.  이렇게 스러져 간 순교자들은 그 수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수천 명으로 추정되는 순교자들 중 70여 명만이 이름과 출신지를 남기고 있으나 그나마도 불확실하고 나머지는 이름 석 자 하나 남기지 못한 무명 순교자들이다. 이들이 숨져 간 유적지는 현재 깨끗하게 단장돼 있다. "예수 마리아"를 부르는 교우들의 기도 소리를 '여수머리'라 알아듣던 주민들의 입을 통해 '여숫골'이라는 이름으로 전해 오는 생매장 터인 진둠벙이, 14처 노천 성당으로 단장돼 있다. 순교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했던 해미 읍성에는 교우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가 있고 그 옆에는 고문대로 쓰던 호야나무가 남아 있다. 이 나무 위에 머리채를 묶인 순교자들이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것이다. 서문 밖 순교지에는 1956년에 서산 성당으로 이전, 보존되었던 자리개 돌다리가 1986년에 원위치를 찾아 복원돼 있다. 1935년에는 서산 본당 범 베드로 신부에 의해 순교자들의 유해와 유품들이 발굴돼 30리 밖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돼 있었는데 최근 원래의 순교 터인 생매장 순교지 순교탑 앞으로 이장됐다. 해미 성지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성지는 한티 고개이다. 이 고개는 당시 죽음의 길로 악명 높던 순교자들의 압송로로 달레의 "한국 천주교회사"에도 그 기록이 나온다. 외길이지만 압송로 표지 리본이 눈에 잘 띄게 달려 있어 별어려움 없이 순례할 수 있다.
 
충남 당진군 우강면 송산리 114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가 출생한 곳으로 그의 생가와 동상, 기념관이 있는 곳이다. 국내 제1의 가톨릭 성지로
명성 자자 한 이곳은 1984년 5월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한한 교황요한바오로 2세로부터 그가 성인으로 시성된 후 전세계 카톨릭 교회의 공경의 대상이 됨에 따라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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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정희 2010.04.30 22:12 (*.92.209.15)
    사진들 보면서 다시한번 가슴 아픔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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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현 세례자 요한 2010.05.03 10:09 (*.248.150.67)
    순교성인들의 순교영성과
    내용공부 잘하고 갑니다.
    지금의 우리는 너무나도 편안한
    신앙생활을 하는것 같아 죄송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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