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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자유,

자크 필립 지음. 김은수 옮김. 성바오로 출판사.

 

그리스도인 각자가 아무리 열악한 외적 환경 속에 있다 할지라도, 자신의 내면에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자유의 공간을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은 본질적인 문제로 보인다. 왜냐하면 바로 그 공간의 원천이며 그곳을 보장해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깨달음이 없다면, 우리는 늘 삶이라는 좁은 울타리 안에 갇혀 진정한 행복은 전혀 맛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반대로 만약 자유의 내적 공간을 우리 안에 펼쳐 보일 줄 안다면, 틀림없이 여러 가지 일들로 고통스럽겠지만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정말로 억누르거나 속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유에 대한 개념은 현대 문명과 그리스도교가 만나는 특정한 장소로 보일 수 있다. 이 점은 실제로 자유와 해방이라는 메시지로 나타난다. ‘자유로운’, ‘자유’, ‘해방하다라는 단어들이 자주 사용되는 신약 성경을 보면 충분히 입증되는 일이다. , 요한 복음서에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8, 32)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고, 바오로 성인은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코린 3,17)라고 단언하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려고 해방시켜 주셨습니다.”(갈라 5,1)라고 하고 있다. 그리고 야고보 성인은 그리스도의 법을 자유의 법”(야고 2,12)이라 불렀다.

 

현대문명에서 자유는, 불과 몇 세기 전부터 마치 각자가 자신의 강한 열망을 통해 명백히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되어 왔다. 그렇지만 자유란 것이 얼마나 모호한 개념이며, 그로 인해 생긴 끔찍한 적대감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빗나간 기준이 될 수 있음도 알려져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열망은 행복에 대한 것이기에, 또한 그토록 깊은 자유에의 갈증을 드러낸다. 인간은 모름지기 사랑 없이는 행복이 없으며 자유 없는 사랑은 있을 수 없음을 꿰뚫어 보고 있다. 분명한 사실이다. 인간은 사랑으로 창조되었으며, 사랑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시에나의 카타리나 성녀가 말했듯이 인간은 사랑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알지 못한다. 문제는 잘못된 사랑을 하는 데 있다. 진정한 사랑만이 만족감을 줄 수 있음을 알지 못하고 이기적인 방법으로 사랑하다가 결국 스스로 실망하고 만다.

사랑만이 완전한 만족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자유 없는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압이나 이기심, 혹은 오직 필요에 의한 만족을 앞세우는 사랑은 사랑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사랑은 빼앗는 것도,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행복한 사랑은 서로를 자유롭게 주고받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존재한다.

 

사람들은 자유의 이 놀라운 가치를 이미 꿰뚤어 보고 있다. 자유는 사랑에 가치를 부여하고 사랑은 행복의 조건이 된다. 인간이 자유를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막연하나마 이러한 진실로부터 오는 직감에서일 것이다.

 

현대인에게 자유롭다는 것은 흔히 모든 불편이나 권위를 내던져 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느님도, 스승조차도, 반대로 그리스도교 안에서는 하느님에 대한 복종, 즉 바오로 성인이 말한 믿음의 순종”(로마 1,5) 안에서만 자유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를 인간의 승리라기보다는 하느님께서 주신 무상의 선물이며 성령의 열매이다. 그것은 창조주이시며 구원자이신 그분께 얼마만큼의 사랑으로 종속되어 있는가에 따라 받는 선물이다. 복음적 역설이 가득찬 다음의 말씀을 들어보자.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가지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마태 16,25) 온 힘을 다하여 자신의 자유를 지키고 보존하려는 사람은 그것을 잃어버릴 것이고, 믿음과 함께 하느님의 손에 맡김으로써 그 잃어버림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성인들의 생생한 체험이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그들은 모든 것이 그분 뜻대로 되기를 바라면서 스스로를 온전히 내놓았다. 그러면서 점차 자신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빼앗아 갈 수 없는 무한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바로 거기서 진정한 행복을 맛보게 된 것이다.

 

자유의 개념에 관한 또 하나의 근본적인 환상은, 본질적으로 내적 현실인 자유가 주변 상황에 따른 외적 현실로부터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체험한 이야기를 다시 들어보자. “내 안에 님이 계시거늘 나는 밖에서, 나 밖에서 님을 찾았습니다!”(고백록 10,27)

 

설명해 보자. 대체로 우리는 자유를 구속하는 것이 주변 여건들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받는 규제들, 다른 사람들로 인해 받아들여야 하는 모든 종류의 의무, 건강이나 신체적 능력에 예속되어 감당해야 하는 구속들,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물론 이러한 구속이나 한계들을 없애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갇혀 있는 상황들 안에서 어느 정도 숨 막힌다.”고 느낄 때, 그 원인이 되는 제도나 사람들을 원망한다. 또한 살아가면서 입맛에 맞지 않고 바라는 만큼 자유로워지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한탄을 늘어놓는가!

 

물론 이렇게 사물을 보는 방법에도 일리는 있다. 자유를 위해서는 넘어야 할 한계가 있으며 벗어나야 할 구속도 있다. 그러나 삶에서 자유를 방해하고 있다고 믿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우리가 열망하고 있는 무한한 자유를 찾는 데는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또 다른 구속들이 생겨날 것이고 더 멀리서 또 다른 어떤 것을 찾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앞서 제기된 문제들 속에 계속 머물게 되고 끊임없이 자유를 추구하면서 영원히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항상 고통스러운 제약들에 부딪치게 될 것이다. 그중 몇몇은 벗어날 수 있겠지만 물리학적인 법칙들이나 인간 조건, 사회생활에서의 한계 같은 몇몇 제약들은 매우 단단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을 것이다.

 

우리 스스로,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서, 진정한 자유를 발견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봤을 때 협소하고 보잘것없는 데레사 성녀의 세계가 그토록 풍요롭고 넓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왜일까? 가르멜 수녀원의 생활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에서는 왜 자유의 느낌이 묻어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단지 그녀가 열렬히 사랑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에 대한 자비로운 마음으로 뜨겁게 불타올랐으며, 어머니의 자애로움으로 교회와 온 세계를 감싸 안았다. 삶의 비밀은 여기에 있다. 사랑으로 살았기에 그녀는 작은 수녀원 안에서도 옹색하게 지내지 않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키며, 가장 평범한 것들 속에 무한이라는 분위기를 넣을 수 있다.

 

마리아 파우스티나 고발스카 성녀는 영적 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 “사랑은 스쳐 가는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변모시켜 하느님께 기쁨을 드리는 신비이다. 하느님의 사랑은 영혼을 자유롭게 하며, 자유로운 영혼은 노예의 구속을 알지 못하는 여왕과도 같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 보니 바오로 성인이 코린토 신자들에게 전한 한 무장이 떠오른다. “우리가 여러분을 옹색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의 속이 옹색한 것입니다.”(2코린 6, 12) 우리는 흔히 상황이나 가족, 또는 주변이 옹색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아마 다른 곳에 있을 것이다. , 우리가 옹색하다고 느끼는 것은 우리 마음속의 문제이며, 바로 그곳에 자유 결핍의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좀 더 사랑한다면, 사랑은 우리 삶에 무한의 차원을 부여할 것이며 우리는 더 이상 옹색함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실제적인 내면의 자유를 맛보기 위해서 우리의 마음이 바꿔야 할 객관적인 상황이나 고쳐야 할 억압적이고 숨 막히는 상황이 없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는 대체로 어떤 환상 속에 있다는 것이다.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데도 우리는 주변을 탓한다. 자유의 부족은 사랑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다. 사실상 문제는(해결책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에게 있음에도, 스스로를 마치 불리한 상황의 희생양으로 생각한다.이기주의나 두려움에 사로잡힌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그러므로 바꿔야 하고 성령에 의해 변화되도록 기다리며 사랑하기를 배워야 하는 것도 우리의 마음이다. 그것이 스스로 갇혀 있다고 느끼는 옹색함에서 벗어나는 단 하나의 방법이다.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항상 혜택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도처에서 옹색함을 느낄 것이다.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어떠한 곳에서도 옹색함을 느끼지 않는다.

 

사랑에 대한 무능력은 대부분 믿음과 희망의 부족에서 나온다.

 

오늘 아침 자전거를 타고 스타디온카데를 달리면서, 도시 가장자리를 감싸고 있는 넓은 지평선에 매혹되었다. 그리고 아직은 우리에게 배급 제한이 없는 맑은 공기를 마셨다. 자연속으로 나 있는 작은 길 도처에 유태인 출입 금지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아직 여려 있는 길 끝 위로는 하늘이 온전히 펼쳐져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정말 아무것도, 물론 우리의 삶을 힘들게 할 수 있고, 물질적인 재산을 약탈해 갈 수 있고, 전적으로 외적인 행동의 자유를 빼앗을 수도 있다. 그러나 비참한 심리적 자세로 우리가 가진 최상의 능력을 없애 버리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스스로 박해받고 모욕당하고 억압당한다고 느끼며, 그리고 증오심을 보이며,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허세를 보이며 우리가 겪는 일에 대해 때때로 슬퍼하고 낙심할 수는 있다. 인간이므로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진정한 약탈, 그것을 행하는 자는 우리 자신이다. 삶은 아름답고 나는 자유롭다. 나에게 천국은 하늘보다 더 넓게 펼쳐져 있다. 나는 하느님을 믿고 인간을 믿는다. 그것을 감히 부끄럼없이 말할 수 있다. 나는 행복한 여자이고 삶을 찬미한다. 그렇다. 늘 새로워지는 주님의 해, 전쟁의 때인 이 1942년에도 나는 삶을 찬미한다.”(에티 일레쥠Etty Hillesum, 1942년 아우슈비츠에서 사망. 헝크러진 삶, 일기 Une vie bouleversee, Journal(1941~43)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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