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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본당 주임신부님
2016.07.12 12:27

떠난 후에

(*.193.111.77) 조회 수 441 추천 수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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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난 후에”

  눈물이 왈칵거리고 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어머니의 일기장에 쓰인 넷째 딸 이야기 위로 뚝뚝... 회한이 번집니다. 넷째 딸... 셋째 딸은 얼굴도 보지 않고 데려간다는데, 넷째는... 왠지 천덕꾸러기처럼 느껴집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는 유독 저에게만 잔소리가 많으셨습니다. 그럴수록 저 또한 마음이 집과 어머니에게서 겉돌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독립하여 집에서 먼 대학으로 진학하였습니다. 명절이 되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집에 가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집에 가더라도 살가운 정 없이 어정쩡하게 시간만 보내다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시던 어머니가 그예 돌아 가셨습니다. 며칠 전 위독하다는 연락에 병원엘 다녀갔다가, 병세가 조금 나아지나 싶어 돌아왔었는데... 때가 되었으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비보를 접하니 머리속이 복잡해졌습니다. 가슴 한쪽이 먹먹하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다 어처구니없게도 밀린 회사 일이 어지럽게 돌아가고,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친구들과의 약속이 떠올랐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이어서 어머니와의 불편했던 기억들이 스멀스멀 기어올랐습니다. 정 떼기라도 하시려 했을까? 몸져누운 뒤 가끔 뵈러 가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말씀을 꼭 하셨습니다. “시집도 안가고... 시집 갈라카모 옷도 좀 예쁘게 입고, 화장도 좀 하고 다니고... 집에 올 때는 남자 좀 달고 오면 얼마나 좋노. 니 나이가 벌써 몇이고 낼 모레면 마흔이다 마흔, 누굴 닮아서 그렇게 속을 썩이는지... 너도 시집가서 꼭 니 닮은 딸 낳아봐라! 딸자식 키워봐야 소용없다. 소용없어” 지난 일들을 생각하니 씁쓸해졌습니다.

  정신없이 장례를 치르고 삼우를 지냈습니다. 언니 동생 가족들은 자기 삶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혼자 사는 저는 딱히 돌아가야 할 곳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자매 가족들의 정다운 뒷모습을 보면서, 이래서 가정이 필요하구나 싶었습니다. 혼자 들어서야하는 컴컴한 아파트가 싫어서 하룻밤 더 고향집에서 자기로 하고 어머니 유품을 하나 둘 정리 하였습니다. 유품 정리를 하다 어머니 일기장을 발견하였습니다. 매일 쓰지는 않으셨지만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마다 기록을 해놓으셨습니다.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눈물이 와락 쏟아 졌습니다. 저에 대해서 써놓으신 이야기였습니다. “넷째는 야무지고 영민해서 큰일 할낀데.. 그래도 여자는 곰살 맞아야 시집가서 남편한테 이쁨 받을낀데... 어쨌든 넷째가 아들 없는 집안에 큰일을 한번 할끼라, 암 넷째가 잘 되면 딴 놈들도 챙기고 할끼라” 어머니는 저에 대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계셨습니다. 아들 없는 집안에 저를 남자처럼 키우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언니 동생들은 모양내고 멋 부려도 혼자 무덤덤한 저에게 잔소리를 하셨지만 내심 든든하셨던 모양입니다. 알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저에게 가지셨던 기대가 어떤 것이었는지. 많이 배우지 못하셔서 그 한을 푸시려고 주민 센터 강좌를 들으러 다니시고, 내가 좋은 대학은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에 합격했을 때 그렇게 동네 분들에게 자랑하고 다니셨는지. 그 때는 어머니가 주책스럽고, 남새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왜 그분이 떠나가신 후에야 사랑임을 알게 될까요? (제가 일하는 센터 직원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졸필이라 그때 감동을 전하지 못하겠네요. 죄송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위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왜 하느님의 사랑을 지금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도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걸까요?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색과 색은 모이면 검어집니다. 하지만 빛과 빛은 모이면 더욱 밝아집니다. 바로 하느님 모습이 이렇지 싶습니다. 성부 하느님의 그 큰 빛과 성자 하느님의 사랑으로 따뜻한 빛과 성령 하느님의 거룩하게 부드러운 빛이 모인 삼위일체의 빛은 너무나 밝고 거룩하며 따뜻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찬미 받으소서!  
<2014년 ?잡지>
글을 여기저기 쓰다보니 어디에 썼는지 기억도 잘 안나네요.
어쨌든, 왜 우리는 떠난 후에야 그가 소중한 사람이란걸 깨달을까?
어느 시인의 글 귀처럼,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알지만 또 시간이 지나, 지금이 과거가 되면 지금 이 시간에 대해 또 후회하지 않을끼요?
 

  • ?
    옥포성당 세례자요한 2016.08.30 15:34 (*.176.92.10)
    사랑하는 어머님의 마음이 가슴 뭉클하게 전해오네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저희들도 하느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고 있을터인데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며 위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왜 하느님의 사랑을 지금 깨닫지 못하는 걸까요?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도 떠난 후에야 알게 되는 걸까요?

    하느님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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