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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본당 주임신부님
2016.12.05 15:49

"바삐의 성탄"

(*.193.111.77) 조회 수 375 추천 수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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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삐의 성탄

  쭈삣쭈삣한 아파트 사이에서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한참을 놀다 가면 코끝이 메 하게 시려옵니다.
코끝을 감싸쥐어도 춥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아무리 차고 세어도 성당 개 바삐는 끄덕 없습니다.
엄마가 입혀주신 후 한번도 벗어 본적이 없는 두툼한 털옷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조금만 추워도 몸을 웅크리고 총총 걸어다닙니다. 개구쟁이 아이들도 집안에만 콕 박혀 있답니다.
하지만 바삐는 이럴 때일수록 어깨에 힘을 잔득 주고 방범대원 아저씨처럼 동네를 한바퀴 쓱 돌아봅니다.
바람에 날아가는 과자봉지를 따라 뛰며 짖어보기도 합니다.
순찰 임무를 마치고 성당으로 돌아와서 엎드려 있으면 콧물이 쪼르르 흘러내립니다.
훌쩍 코를 먹으면 심심해 집니다. 큰 신부님은 아침에 휭하니 나가셨고, 작은 신부님은 방에서 글을 쓰고 계십니다.
마음씨 좋은 사무장님은 난로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겠지요.
  바삐는 아이들이 보고 싶습니다. 아이들은 왁자하게 떠들어대면서 과자를 던져주기도 하고,
자랑스러운 털을 먼저 쓰다듬으려고 다투기도 한답니다.
  하품이 아- 나옵니다. 이때 봉고 차 한 대가 코로롱 성당 앞에 멈추어 섭니다.
  -앗! 요아킴 아저씨다, 우와 도망가야지-

  후다닥 바삐가 사무실 쪽으로 도망가자 아저씨가 바삐를 부릅니다.
  "바삐~ 히히 뛰어봐야 벼룩이지"
아저씨가 바삐를 덥석 안아버립니다. 아저씨는 바삐를 볼링공이나 기계체조 선수로 아는가 봅니다.
바닥에 굴리기도 하고 빙글빙글 돌리면서 체조를 시킵니다.
  "요녀석, 도망가면 얼마나 가겠다고 그러냐"
  -아고, 또 잡혔다-
아저씨는 바삐를 안고 작은 신부님 방으로 갑니다.
  "신부님"
아저씨가 문을 두드리면서 신부님을 부릅니다. 문이 열리고 작은 신부님이 아저씨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요아킴씨 오셨군요. 에구! 목욕도 시키지 않은 바삐를 왜 안고 계십니까? 내려놓으세요"
신부님은 바삐가 미운가 봅니다.
  "자, 바삐야 저리 가서 놀아라"
요아킴 아저씨는 바삐를 내려놓고 신부님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쳇! 신부님도 너무하셔, 2년 전에 목욕한 깨끗한 몸을 보고 괜히 그러셔.-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한참 만에야 방에서 나옵니다.
신부님은 한쪽 손에 종이 뭉치를 잔뜩 들고 사무실로 가면서 요아킴 아저씨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제 성탄이 며칠 남지 않았으니 서둘러야겠어요"

  조용하던 성당이 오늘은 아침부터 시끄럽습니다.
청년들이 몰려와서 뚝딱뚝딱 망치질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바쁘게 일을 합니다.
바삐도 신이 났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다닙니다. 작은 신부님도 이래라 저래라 간섭을 하며 다닙니다.
점심때가 되자 청년회 아가씨들이 성당 부엌에서 끓인 쇠고기 국밥을 퍼내옵니다.
청년들은 바닥에 아무렇게나 둘러앉아 떠들어대며 맛있게 먹습니다. 막걸리도 한잔씩 돌립니다.
  -아이고 맛있겠다-
바삐는 침만 삼키며 주위를 맴돕니다.
"로사, 바삐도 한 그릇 주지 그래"
아, 역시 요아킴 아저씹니다. 나를 못살게 굴기는 하지만 그만큼 사랑한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바삐는 재빨리 부엌 쪽으로 뛰어가서 로사 아가씨 앞에서 꼬리를 흔듭니다.
  "이 녀석 좀 봐, 말귀를 알아듣고 뛰어왔네"
  "보기보다 개가 영리해요"
  "자 그래 너도 한 그릇 먹어라"
로사 아가씨가 마음씨도 좋게 듬뿍 떠 줍니다.
  "아이고 조금만 줘요 개는 점심 먹이는 게 아니래요"
밉살스런 노엘라 아가씹니다.
  -힝 개라고 입이 없나, 배는 안 고픈가-
점심을 먹은 청년들이 여기저기 모여서 잡담들을 합니다. 그 사이로 신부님이 다니면서 소리칩니다.
  "자! 이제 일을 시작합시다. 겨울 해는 짧아요. 깜빡하면 해집니다."
청년들은 다시 망치질을 하하고 예쁜 꼬마전구에 불을 넣어봅니다.

  사흘 동안이나 요란을 떨던 청년들이 성당 벽에 그림을 걸고 불을 밝히고는 집으로 가버렸습니다.
바삐는 다시 심심해졌습니다. 바삐가 심심해서 하품을 크게 하는데 주일학교 선생님 두 명이 성당에 왔습니다.
바삐를 예뻐해 주는 현숙이 선생님이랑, 개라면 질겁을 하는 언령이 선생님이었습니다.
  "바삐 안녕!"
현숙이 선생님이 바삐를 반갑게 부릅니다. 바삐는 꼬리를 흔들며 뛰어 갔습니다.
  -왈왈 안녕하세요, 왈왈-
현숙이 선생님이 바삐를 기분 좋게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어머 얘!, 지저분하게 저리가!"
언령이 선생님이 바삐를 발로 톡 찼습니다. 화가 난 바삐가 언령이 선생의 바지가랑이를 물었습니다.
언령이 선생이 큰 소리로 신부님을 부릅니다.
  "신부님 살려주세요!"
현숙이 선생은 웃고만 있습니다. 바삐는 신이 났습니다. 아... 그러나 비극의 순간은 다가 왔습니다.
신부님이 문을 열고 그 모습을 보아 버렸습니다. 신부님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삐 당장 놓지 못해! 너 오늘부터 밥 굶어"
아! 비극이여, 바삐에게는 가장 무서운 벌이었습니다.
  -신부님 차라리 엉덩이를 때려주세요, 밥만은. . .-
바삐는 고개를 숙이고 신부님 앞에 가서 낑낑대며 애원을 합니다.
그러나 신부님은 바삐보다 두 여선생님을 더 좋아하는가 봅니다. 바삐는 내려보지도 않은 채.
  "아이구, 괜찮습니까 선생님. 개가 워낙 멍청해서요"
  -아니 내가 멍청하다니, 이런 억울한 일이!-
신부님의 말보다 더 화가 나는 것은 여우같은 언령이 선생의 이야기였습니다.
  "아이, 괜찮아요 신부님 제가 바삐를 워낙 좋아하잖아요"
이런 일이. . .  으윽 이런이런 얄미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바삐는 사는 게 무엇인지, 아픔이 무엇인지라는 노래가사를 떠올리며 슬그머니 성당을 빠져 나왔습니다.
뒤에서는 두 여선생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쭈삣쭈삣한 아파트 사이에서 12월의 차가운 바람이 한참 기웃거리는 속에서 바삐는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회색 빛 겨울 하늘은 내려앉을 듯 무거운 몸을 버티고 있었습니다. 바삐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 . . 가련다, 떠나련다, 여우같은 여자가 없는 곳 신부님이 나를 찾지 못할 곳으로 . . .
바삐는 성당에서 멀찍이 떨어진 미개발 지역으로 갔습니다. 몇 번 본적이 있는 개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바삐는 분한 마음으로 이러쿵저러쿵 낱낱이 고아 바쳤습니다. 개들은 혀를 차기도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길래 인간들은 다 똑 같다니까요.! 어릴 때야 귀엽다고 쓰다듬지만 몸집이 커지면 잡아먹을려고 침을 흘리잖아요.
바삐씨 잘 왔어요 우리랑 함께 살아요-
나이가 지긋한 멍순이 아줌마가 바삐를 위로하였습니다. 바삐는 자기편이 있다는 것이 가슴 뿌듯하였습니다.
  -그래, 역시 개는 개끼리 살아야해!-

  밤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노래 부르고 떠들어  댑니다.
바삐는 멀찍이 성당을 바라보았습니다.
  -혹시 신부님이 날 찾는 건 아닐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먹을 것도 많을 텐데. 성당으로 돌아갈까? 아니야! 신부님은 날 좋아하지도 않는데 내가 왜 돌아가-
밤이 길어지자 바삐와 놀던 개들이 하나들 슬그머니 자기 집으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동지들이 하나둘 떠나간 빈자리에 바삐는 혼자 누워 있었습니다. 찬바람은 공터 나무더미 사이에서 윙윙 짖어대었습니다.
  -그래도 신부님이 술이라도 한잔 하셨을 때면 맛있는 오징어랑 뼈다귀를 가져다 주셨는데 . . . 날 안아주기도 하셨지 . . .-
이제는 길에 돌아다니는 사람들도 보이지를 않습니다. 웃고 떠들고 노래하던 사람들도 모두 잠이 들었나 봅니다.
바삐는 바람소리가 너무 무서웠습니다. 바삐는 용기를 내어 일었습니다.
  -성당으로 가야겠다. 신부님이 날 기다리실거야!-
바삐는 성당으로 뛰어갔습니다. 왈왈 신부님을 부르면서 뛰었습니다. 그러나 성당은 조용했습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신부님 방에는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바삐는 왈칵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이때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혹시 신부님인가- "왈 왈 왈"
발소리가 멈추었습니다. 아기를 안은 아주머니였습니다.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다가 바삐를 보았습니다.
바삐도 아주머니를 쳐다보았습니다. 꾀죄죄한 옷차림에 울었는지 눈에 눈물이 그득했습니다.
아기의 얼굴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성당 앞에 아기 보퉁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아기 엄만 어깨를 들썩이며 돌아서 뛰어갔습니다.
  -아기는 어쩌고 혼자가요- "왈 왈 왈"
바삐의 짖는 소리는 차가운 밤 공기를 가르며 별 속으로 흩어졌습니다. 아기가 웁니다. 엄마를 잃어버린걸 알아서인지,
바삐의 짖는 소리에 놀라서 인지. 바삐가 아기의 얼굴을 핥았습니다.
  -아가야 울지 마라- "낑낑 왈 왈"
신부님 방에 불이 켜졌습니다.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리고,
  "바삐, 바삐 왔니?"
뛰어간 바삐를 신부님이 안아 올렸습니다.
  "녀석 어딜 갔다 오느냐. 얼마나 찾은 줄 아니. . . 그런데 어디서 아기 울음소리가..."
성당 문 앞으로 나온 신부님은 바삐를 내려놓고 아기를 안았습니다.
  "쯧쯧, 누가 아기를 버렸구나. 몹쓸 사람, 몹쓸 세상. . . 아가야 울지 마라"
바삐가 꼬리를 흔들며 짖어댑니다.
  -신부님 그 아기가 예수님, 아기 예수님이에요- "왈왈 왈 왈 왈"
바삐의 짖는 소리에 별들이 노래합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 . . 아기 예수 나셨네 . . .-        

<92년, 경남문학>
오래전에 썻던 글인데, 성탄이 다가오니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 집안에도 아기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도록 기도드립니다.




 

  • ?
    옥포성당 세례자요한 2016.12.10 19:05 (*.176.92.10)
    신부님, 바삐의 성탄 잘 보았습니다.
    우리 주임신부님께서는 바삐도 사람처럼 똑같이
    생각해주시는 내용으로 ...
    동심으로 돌아가 즐거운 마음으로 읽어내려가다가
    마지막부분에 극적으로 반전되는 아기 예수님 이야기는
    더욱 감동을 전해준답니다.
    성탄! 아기 예수님은 온 세상 사람들과
    세상모든 피조물들이 모두 함께 맞아들이는 기쁨일테죠.
    신부님께서 올려주신 바삐의 성탄을 읽다보니
    바삐와 같은 개들이 사랑받는 이유는 당연해보이구요.^^
    미리 가정에 성탄인사도 나누어 주신 우리 신부님께
    많이많이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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