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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본당 주임신부님
2016.10.27 17:02

밥이여 오소서

(*.193.111.77) 조회 수 393 추천 수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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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이여 오소서”

  신부님, 지금도 그 국밥 집 가마솥 속은 맛있는 장국으로 설설 끓고 있는지요.
10여 년 전 제 손을 이끌고 갔던 함안 장터 그 국밥 집이 생각나십니까? 허름하지만 정감이 베여있는 집이었습니다. 가마솥 국이 끓듯 사람들로 들끓던 장날이었습니다. 귀한 신부님이 자기 국밥 집을 찾아주셨다고 연신 헤헤거리던 주인 할머니는 건강하시겠지요. 무거운 가마솥 뚜껑을 스윽 옆으로 밀치면 둔탁한 소리와 함께 속살 같은 하얀 김이 뭉클 올랐습니다. 장꾼들의 흥정하는 소리가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구수한 냄새와 가라앉았다 떠오르는 고깃덩이들이 어찌나 맛있어 보이던지요. 투박한 뚝배기에 넘치듯 담긴 국밥을 정신없이 먹다 깍두기 한 입 베어 물고 문득 어린 시절을 떠올렸습니다.
  30년쯤 지난 일입니다. 외할머니께서 저희 집에 함께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흔에 가까운 연세이셨기에 ‘호상’이었습니다. 저는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사람들이 흥청거리는 분위기가 더 좋았던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걸인들이 꽤나 많았더랬습니다. 저보다 연배가 높으시니 기억하실 겁니다. 없이 사는 사람들은 한 끼 해결하는 것조차 무척이나 힘든 때였기에, ‘회갑’이나 ‘돌’ 심지어 ‘초상집’마저도 먹을 것이 풍족하다면 너나없이 모여서 작은 일손이라도 거들고 한 입씩 채울 때였습니다. 그럴 때니 걸인들에게 초상집은, 특히 ‘호상’이라면 잔치 집이나 다름없었겠지요. 사람들 또한 인심이 넉넉해서 이 사람 저 사람 가리지 않고 국밥을 퍼주었습니다. 함안 장터의 국밥이 바로 그 맛이었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나려고 했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특별한 재료를 쓰지 않아도, 비싼 조미료를 넣지 않아도, 웰빙 음식이 아니라도, 다이어트에 효과가 없어도, 품위 있는 사람들이 아니어도, 파티가 아니어도 그저 사람과 사람이 나누어먹고 마시기 때문에 맛이 있는 국밥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합니다. 저도 그렇게 말해왔습니다.
  “요즘 세상 밥 못 먹어서 가난하냐?”
  “지가 게을러서 그렇지 밥 굶는 사람이 어디있냐?”
며칠 전 인터넷 신문을 뒤적이다 울 뻔했습니다.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러워서 화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대구에서 굶어 죽어간 아이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를 올리며 무관심에 면역되어버린 저와 모든 가난한 영혼을 위하여 더 큰 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신부님, 성탄절이 다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떠올려봅니다. 외아들로 태어나 온갖 귀여움을 다 받고 자랐을 성싶은데. 사실 그 첫 출발이나 마지막을 보면 안타까운 사연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태어난 곳이 마구간이요, 탯줄을 끊고 뉘어진 곳이 “말구유”(루가2장 7절)였습니다. “구유”가 무엇에 쓰는 물건이겠습니까? 말 밥통 아니겠습니까? 밥통에 무엇이 들어가야 마땅하겠습니까? ‘밥’이지요. ‘밥’. 예수님은 세상에 밥이 되어 오셨습니다.
배반자와 함께 한자리를 만들고, 자신을 버리고 도망갈 겁쟁이들을 제자랍시고 귀엽다고 가슴에 머리를 당겨 안아 주시면서 드시던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유언을 남기십니다. “이 빵은 내 몸이요 이 포도주는 내 피다. 너희는 먹고 마심으로써 나를 기억하라.”(마르코14장 22절 이하)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떠나시면서 자신을 밥으로 내어주십니다. 예수님은 가히 ‘밥’의 하느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만드신 기도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는데 믿는 이들이 입에 달고 사는 그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그 중에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고”(마태오6장 11절)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먹고사는 일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셨는가하는 것이 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성탄절이 되면 믿는 사람이든 믿지 않는 사람이든 마음이 들뜨고 괜히 기분이 좋아집니다.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롤” 때문일 수도 있겠고, 연말연시의 회한과 기대감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에 상관없이 성탄절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그저 ‘밥’의 탄생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렇다면 세상에 ‘밥’이 되어 오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밥’이 되어 배고픈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라는 것 아니겠습니까? 거창하게 복지 시설을 방문하고 사진을 찍고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바로 옆집을 들여다보십시오. 민족 고유의 명절은 아니지만 내 바로 옆집아이가 성탄절에 ‘밥’을 굶어서야 되겠습니까?              

  신부님, 올해는 유난히 따스한 겨울임에도 옷깃 보다 더 깊은 가슴속을 파고드는 추위는 더하다 싶네요. 그러나 아무리 어려워도 ‘밥’으로 오시는 예수님처럼 우리가 이웃의 ‘밥’이 될 수 있다면 ‘희망’이라는 단어 하나쯤은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되겠지요.
  가까이서 형님의 ‘밥’ 신부 드림.        

<2004년 12월> 또 오랜만에 글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게을러서. 날씨가 쌀싸해지니 성탄이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이웃과 나누며 살아야할텐데요.... 말로만 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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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옥포성당 세례자요한 2016.10.30 18:21 (*.176.92.10)
    신부님께서 올려주신 칼럼을 읽다보면 어려웠던 옛시절이
    아련히 떠오르기도 한답니다. 요한이 어렸을때의 작은 시골마을은
    성당이나 개신교회가 없는 산골마을이었는데요.
    이웃마을에는 작은교회가 있어서 일년에 딱 두번갔었습니다.
    봄에 보리개떡하고 사탕 주는날 하고요
    함박눈이 내리는날 추위도 잊고 동네 아이들이 함께가면
    교회는 많은사람들이 있었고 모두 기쁜표정들이 기억이 납니다.
    하느님도 교회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시절에
    지금 생각해보면 봄에는 부활절행사였고요
    겨울엔 성탄절 행사였던것 같습니다.
    오늘 신부님의 칼럼을 보니 어린시절 무지 배고픈때에
    하느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에게도 하느님교회에서는
    배고픈 사람들을 초대하여 배부르게 먹여주던 나눔의 사랑실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라는 성경구절이 새롭네요.
    신부님 칼럼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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