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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본당 주임신부님
(*.193.111.77) 조회 수 520 추천 수 2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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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밥, 주님의 밥”

  15년 전 신학생 때, 전라남도 광양군 월길리 중도 부락 ‘중도공소’에서 한달 남짓 기거한 적이 있었다.
지금은 ‘광양군’이 ‘광양시’로 발전하였고, 오랫동안 가보지 않았지만 그곳도 많은 것이 변하였으리라.
그 당시의 중도 부락은 70여 호가 모여 사는 섬진강 삼각주의 자그마한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수더분하고 인심은 훈훈한, 그야말로 딱 시골이었다. 공소예절에 참석하는 신자라야 삼십 오륙 명 정도.
아이들에게 교리도 가르치고 농사일도 거들면서 한달 여를 지냈다.
해질녘 공소로 돌아오면 신자들이 보내준 개구리참외며 수박이 한 두 덩이씩 있고는 했었다.
쓱쓱 잘라서 한입 베어 물면, “캬~ 달고나 수박, 꿀참외!” 라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공소예절에 참례했던 할머니가 꼭 밥 한끼 대접하시고 싶단다.
점심․ 저녁은 밭일이 많아서 힘드니 아침을 대접하시겠단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 할머니 댁으로 갔다.
시골집에 들어서면 외양간이 있고, 누렇고 큰 개가 묶인 채 꼬리를 슬슬 흔들고, 간혹 그 옆으로 돼지우리가 있고,
닭이 몇 마리 왔다갔다하는 한가로운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다. 문제는 냄새였다.
여름이라 마루에 상을 차렸는데 소․돼지․개․닭․거름 등의 냄새가 가득했다.
밥상의 모양은 이랬다. 작은 밥상에 밥․김치․나물(이름을 모르겠다)․
할머니가 준비한 회심의 역작 ‘돼지고기 국’이 있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의 해장술 쐬주가 반병 있었다. 함께 기도를 드리고 첫 술을 뜨는데 할아버지께서 한잔 받으시랜다.
잔을 받아 고개를 돌리고 한잔 쭈~욱 들이키는데. 새벽 빈속에 마시는 쏘주의 맛, 아는 사람만 안다.
할아버지께 한잔 권해드리고 안주 삼아 돼지고기 국을 한 숟갈 떠먹으려는데,
고기가 두툼한 것이 보라색 도장밥과 털이 숭숭 보였다. 그 땐 그랬다.
고기에 도살장에서 나올 때 찍은 보라색 도장밥이 꼭 남아 있었고 털이 다 벗겨지지 않았었다.
그 짧은 순간 내 잔머리는 회전하여 지구를 두 바퀴 반이나 돌았다.
숟가락을 약간 기울이며 고기를 국그릇으로 다시 떨어뜨렸다. 다행이 국그릇엔 작은 파문만 일고 잔잔해졌다.
결국 밥을 몇 술 떠지도 않고 밥상을 물렸다. 이른 아침부터 밥을 준비한 할머니의 서운한 얼굴빛을 보면서도...
참 어렸다. 어리석었다.
가게도 없는 시골에서 그 귀한 돼지고기를 구하시려고 얼마나 애쓰셨을까?
할머니가 지으신 밥은 그냥 먹고 똥으로 내보낼 밥이 아니었는데...
그분들의 순박한 사랑과 정성이 담긴 밥이었는데...
아직 그분들이 살아 계실까? 다시 가면 밥 한끼 지어 주실까?

  시골에서는 손님이 오시면 꼭 입을 다시게 해드려야만 제대로 사람 구실을 했다고 여긴다.
밥 먹을 때 손님이 오면 먹던 숟가락을 씻어서라도 같이 한술 떠야지 그게 사람의 도리다.
그래서 ‘똥은 옆에 두고 밥을 먹어도 사람을 두고는 못 먹는다’했다. 밥은 단순한 식량의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다.
밥은 생명이고, 밥을 나누는 것은 생명과 존재를 나누는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며 내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서 살고 나도 그 안에서 산다."(요한 6,55)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고 마시며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때에야 비로소
사람 구실을 하는 신앙인이 될 것이다.    
<'빛두레'강론 2002년>

오랜만에 옛글을 꺼내어 읽어 봅니다.
묻은 먼지를 탈탈 털어내고 나니 읽을만은 합니다.
내 속에 먼지도 탈탈 털어내 봅니다.
그 때 그 어르신들은 건강하실까요?
따듯한 밥한그릇 대접해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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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운숙(마리아) 2016.03.16 18:48 (*.69.201.240)
    안녕하세요
    신부님께서는 "기다림이란! 이런 것이다 " 라고 가르쳐 주시는 듯
    재밌게, 뜻깊게, 생생하게 읽었습니다.

    "숟가락을 약간 기울이며 고기를 국그릇으로 다시 떨어뜨렸다" 이 부분이 격하게 공감합니다.
    저도 그랬을 것 같아요. 짐승들 응가냄새, 여름이라 파리 윙윙 다니고,...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니, 할머니의 마음이 되어 보는 것!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크나 큰 의미가 있음을,
    하물며 미사때 받아 모신 영성체...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그렇게 살아 보려 노력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옥포성당 세례자요한 2016.03.18 16:34 (*.176.92.10)
    우리 주임신부님의 이번주 칼럼
    아주 기쁜 마음으로 잘 읽었습니다.
    우리 주임신부님의 영육간의 건강을위해
    기도드립니다.
  • ?
    옥포성당 세례자요한 2016.03.23 21:36 (*.176.92.10)
    할머니께서 그 비싼 돼지 잡지 마시고
    닭한마리 잡아서 우리 신부님 드렸으면 참으로 좋으셨을텐데요^^
    우리 주임신부님 다시 가시면 꼭 닭장의 닭 한마리 잡아주세요~~~
    신부님을 대접해 드리려는 할머니의 마음이 너무 아름답고 거룩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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