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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본당 주임신부님
2016.05.24 09:33

꿰찌르는 사랑

(*.193.111.77) 조회 수 452 추천 수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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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꿰찌르는 사랑”

  1987년 여름 방학, 신학교 4학년이었던 저는 한해 후배님(임효진 신부님)과 하동 성당 ‘중도 공소’에 방학 체험하러 갔습니다.
하동 성당에서 사목하시던 황봉철 신부님께서 저희들을 불러주셔서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전라남도 광양군 진월면 월길리 중도 부락’에 있는 ‘중도 공소’는 70여 호가 사는 신앙 마을 이었습니다.
물 맑고 바람 깨끗한 섬진강 줄기보다 더 맑은 사람들이 깃들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중도 부락은 섬진강 삼각주로써 전체가 모래였습니다.
흙에 돌이 없어서, 집을 지을 때는 그냥 마당에다 시멘트 풀고 물 부어서 쓱쓱 비비면 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물이 잘 빠지는 모래 밭이다보니 참외와 수박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제법 규모 있게 농사짓는 부농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생활이 어려웠습니다.
우리나라 경제 자체가 한참 발전하던 때이고, 전라도 쪽이 경제적으로 소외 받을 때라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 마음 씀씀이는 참으로 넉넉했습니다.
서로 빤하게 아는 사이들인데, 그 속에 들어온 이방인들을 따뜻하게 맞이해주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특히 초·중·고 학생들이 저희들을 잘 따랐습니다.
그 중에서도 여학생들은,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저보다 잘 생긴 임효진 후배님을 유독 좋아했습니다.
저는 서운한 마음이 그득했지만 선배 체면 지킨다고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꽁하고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항상 뭉쳐 다니는 3명의 여중생이 ‘미녀 삼총사’로 자처하며, 우리가 거처하는 공소에 붙어살았습니다.
그 나이에 맞게 까불거리고 수다를 잘 떨던 아이들 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뭘 하고 어떻게 사나 궁금해집니다.
그 중에서도 같은 중3이면서 공소에 가끔씩 보이던 헬레나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어머니 병시중에 동생 둘을 돌보며, 강에 재첩을 캐러 다니는 억척스럽지만 성실하게 사는 아이였습니다.
공소에 어찌 한번 오더라도 저만치 끝자리에 앉아서 말없이 앉았다가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한 달 남짓 지나고, 여름이 끝날 무렵 후배님과 저는 ‘중도 공소’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떠나기 전날 아침부터 어른, 아이들 모두 한 번씩 들여다보고 인사하러 왔습니다.
자칭 ‘미녀 삼총사’는 서운한 마음에 하루 종일 공소에서 노닥거리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지막 날이라 공소 회장님께서 초대한 저녁 식사에 갈려고 공소를 나서는데,
하루 종일 보이지 않던 헬레나가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이름을 부르니 살짝 흘려보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옷만 비비꼬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잘 지내, 넌 착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야”라며 어깨를 토닥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뜻 밖에도 그렇게 말없던 녀석이 소리를 쳤습니다.
“싫어요, 착하게 살기 싫어요! 저 학사님 좋아한단 말이에요!” 그리고는 뒤 돌아 보지 않고 뛰어 갔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멍하니 서있었습니다. 고함소리를 들었는지 후배님이 나오며 누가 왔냐고 물었습니다.
  다음날, 떠나는 우리들을 환송하기 위하여 마을 어귀에 많은 분들이 나오셨습니다.
한 분 한 분 손을 잡고 건강과 하느님의 축복을 빌며 떠나 왔습니다. 그러나 헬레나는 끝내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중도공소’가 마산교구가 아닌 광주 교구가 되어버려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헬레나, 아마 건강하고 아름답게 잘 지내겠지요.

  사랑은 달콤하기만 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예리하고 날카로워 사람을 다치게도 합니다.
그러나 달달한 사랑보다 아픈 사랑이 사람을 더 자라게 합니다.
루카 복음 2,34~35에 <시메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라고 예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형이라는 비참한 죽음을 통해서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신 것처럼,
알아주지 않는 자식들 때문에 속을 썩으면서도 묵묵히 보듬어 주시는 부모님처럼,
내 마음 같지 않은 친구에게 술 한 잔 따르면서 씨익 웃어주는 당신처럼,
한발 다가가면 한발 더 물러서는 가슴 여린 연인처럼.
성모님께 주신 “천주의 모친”이라는 은총의 이름은, 칼로 영혼을 꿰찌르는 아픔으로 생겨납니다.
영혼을 꿰찌르는 하느님 사랑은 은총입니다.
<가톨릭신문, 방주의 창, 2006년>
성모성월에 어머니의 사랑에 대해 썻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가슴 아팠던 작은 아이도 떠오르구요.
많은 사람들이 그 나이 때에 꿰찌르는 아픈 사랑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 통증이 성장통이겠지요.
본당이 바쁜 주간입니다.
건강하세요^^  
 

  • ?
    옥포성당 세례자요한 2016.05.24 10:16 (*.176.92.10)
    우리 주임신부님께서 바쁘신 시간인데도
    잊지 않으시고 꼭 화요일에되면 칼럼을 올려주시네요
    칼럼을 읽을때마다 가슴을 콕콕 찌르는 표현할수 없는
    아름답고 소중한 지나간 사연들...
    신부님 칼럼 내용에 점점 빠져들어가는것 같아요.
    잘 보았어요 신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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