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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 본당 주임신부님
2016.06.14 18:57

끝마음

(*.193.111.77) 조회 수 396 추천 수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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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마음”

  “관장님, 초심, 첫 마음을 잃지 말아야합니다... 딸꾹” 장애인 직업재활 센터 소장이 술만 취하면 하는 소립니다.
직원들은 이 말이 나오면 ‘이제 술자리 접을 때가 되었구나’여깁니다. ‘첫 마음’, 참 좋은 말입니다.
먼 길을 떠나기 전 신발 끈을 고쳐 매며 다졌던 마음, 알지 못하는 여인을 만나며 두근대던 설레임 같은 마음,
초등학교 시절 신문 배달을 하여 받은 몇 푼 되지 않는 첫 월급봉투의 낯설지만 뿌듯함, 어딘가 한쪽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가 문득 눈에 띄어 풀어본 상자 속의 옛 사진의 빛바램 같은 것이 ‘첫 마음’이라 여겨집니다. 아주 먼 길을 떠나 왔을 때 돌아 갈 것을 걱정하며 되짚어 보는 것, 내가 선 자리가 어디인지 알지 못할 때 삶의 보퉁이를 뒤적거려 찾아내는 지도 같은 것이 ‘첫 마음’일 것입니다.

  ‘첫 사랑’ 그 여인은 이제 얼굴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인근 도시에 버스로 통학을 하였습니다.
버스 시간에 맞추어 집을 나서면 저만치서 걸어가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어느새 둘은 익숙해져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여학생이 앞서 가기도하고,
어느 날은 제가 앞서 가기도하였습니다. 그렇게 삼년을 다녔지만 한번도 말을 걸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저는 먼 지방의 신학교를 가게 되었고 한동안 볼 수 없었습니다.
여름의 첫 방학 때 새벽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멀리서 걸어오는 그 여학생을 보았습니다.
머리는 길게 파마를 하였고, 투피스 정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대학을 가지 않고 취직을 하였던 모양입니다.
그 여학생(이제는 그 여인)도 저를 보았는지 잠시 서서 나를 보다가 갑자기 후다닥 길을 건너 반대편으로 도망 가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부끄러웠던가 봅니다. 그 이후 여태껏 한번도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제 첫사랑은 그렇게 끝났습니다.
  두 번째 ‘첫 사랑’은 정의구현 사제단이었습니다.
신부 초년 시절 선배님을 따라 어딘지도 모르고 따라왔던 서울의 한구석 작은 회의실,
처음 뵌 신부님들과 악수를 나누며 어색하게 들었던 이야기들 민주, 성명서, 시국... 그리고 지금 그리 성실 하지도 않으면서 염치없이 교구 대표 자리를 꿰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첫 사랑’의 ‘첫 마음’이 가실 줄이야 있겠습니까?!      
          
  열두 편의 짧은 글들을 이제 마칠 때가 되었습니다. 처음 글을 부탁 받을 때는 막막하여 망설여지던 것이 이제는 쬐끔 아쉽다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글 첫 머리, 첫 글을 어떻게 열 것인가 걱정이 참 컸습니다. 이젠 끝 글을 어떻게 닫을 것인가 고민입니다. 시원찮고 텁텁한 글을 참고 잃어 주신 분들께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합니다.
지면의 특성상 시세에 맞지 않은 글도 있을 수 있고(글을 쓴 뒤 2주후에 실리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작은 생각을 확대하여 떠들어 대기도 하였습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제 삶의 ‘첫 사랑’들을 풀어 놓듯 이야기들을 풀어 놓았습니다. 혹독한 시절 민중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었던 사제단이 그 ‘첫 마음’을 잃지 않기를 기도드립니다. 저 또한 하나의 사제단으로써 ‘첫 마음’을 ‘첫 사랑’하며 ‘끝 마음’이 ‘첫 마음’이기를 기도해봅니다.      
<2005년 빛두레 연재를 마치며>

*오래 된 글입니다. 다시 읽어보니 좀 우습기도하고, 멋쩍기도 합니다.
천주교 정의구현 마산교구사제단 대표를 하며 한창 뛰어 다닐 때 '빛두레'라는 기관지에 연재를 하였고,
그 마지막 글이었습니다. 그땐 지금 처럼 자가용도 없이 전국을 누빌 땝니다.
어찌했나 싶습니다. 대중 교통도 처음부터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살면 불편 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자가용에 길들여져서...
첫마음과 끝마음, 모두 주님께서 잘 이끌어 주시기를 기도드립니다.
 

  • ?
    옥포성당 세례자요한 2016.06.21 03:53 (*.223.39.56)
    우리 주임신부님의 첫번째 첫사랑은
    침묵의 기도로 시작해서 침묵의 기도로 끝났으니
    침묵기도의 첫사랑은 하느님 보시기에도 이쁜모습
    이셨을거예요.

    두번째 첫사랑은 천주교정의구현 사제단이셨으니
    독재정권의 민중탄압에 맞서서 민주화투쟁에 목숨걸고
    피흘리던 그시절 수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믿음과 꿈을
    심어주시며 항상 함께하여주시면서 하느님사랑을 실천하여
    주시면서 온국민의 사랑을 듬뿍받으셨지요.
    하느님께서 제일 사랑하시는 단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화이팅!
    신부님 언제나 좋은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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